인천 살던 곳
지난 주일 아내와 집을 나섰다
특별한 목적 없이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인천 월미도로 향했다
10여년 전에 가보았던 곳..
인천 도심으로 향하다가 불쑥 젊어서 자취하며 포장마차 하던
시장을 지나치기가 힘들어 차를 주차하고 둘러 보았다
그 시절 20대 초반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그 말 따라
포장마차 하던 시장 앞...
재래시장이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분위기야 그대로지만..
김포집을 아무리 찾아도 그 집은 없다
김포집 2층에서 하숙했었는데..
자취하던 집을 찾으려 골목길을 올랐으나 도저히 찾을 수 가 없었다
좁디 좁은 골목길을 한참을 오르락 거렸으나 없더라
못 찾는건지 개발로 없어졌는지 아쉽다
포장마차 하던 장소는 주차장이 되었다
내가 주차한 그자리가 아마 30여년전 리어카 부리고 포장마차 하던 그 주변일게다
참 행복했고 꿈 많던 시절이었다
송현동 하숙집은 아파트로 재개발되었더군..
오송극장도 허물고 새로 짖는가보다
동인천 뒷부분 시장을 재개발 하는지 다 부수고 있었다
월미도야 늘 북적거리는데 특이한건 산을 개방했더라
언제 개방했는지 모르지만 오르니 상쾌한 바다 바람이 마음을 시원케 해주었다
차이나타운에 들려서 자장면에 탕수육 시켜 먹고 후배 수퍼하는 십정동을 들려
부평 우성아파트로 향했다
우리 식구가 살땐 참 좋았었는데 많이 낡았더라
수퍼마켓이 상가 지하에 꽤나 컸었다고 기억하는데 없어졌고
우리가 살던 동 그 집 현관앞에가니 참 기분이 묘했다
그 집에서 우리 딸 낳았고 처음으로 차도 장만했던 그 집
재미있게 살던 집이었다
아내는 뱃속에 있는 딸이 클때까지 피아노 가르치면서 둘이 벌었지
나는 아마 게서 차장 진급했을거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무척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차를 돌려 신혼을 보냈던 삼산동 아파트로 향했다
82년인가 총각때 장만했던 그 아파트
5층짜리 아파트인데 아직 재개발이 않되었다
후배도 아직 거기서 살고 우리 앞집도 나중에 전화해보니 아직 산단다
그때도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 아파트서 형 결혼해서 분가하고.. 큰 여동생 시집가고
내가 장가가서 작은 여동생과 막내 동생이 형집으로 이사가서
형제들 사용하던 모든 가재도구 내가 다 물려서 썼었는데...
연탄보일러여서 지하에 집집마다 구역을 정해 연탄을 쌓아놓고 조금씩 날라 썼었지..
김장도 지하에 보관하고..
아내는 그 불편함이 추억으로 남았나보다
보자마자 그 얘기부터 한다
계단청소도 다 같이 했었고..
그 집에서 결혼하고 아들 낳고 6년이나 살았었지
그리고 이사를 다섯번이나 했구나..
지금 아파트로 오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이재에 별반 소질이 없어서일까
그래도 이만큼 온것이 대단하기도 하고 아내와 식구들이 무한 고맙다
무탈하고 현재 처럼 건강하고 행복하면 뭐 더 바라겠냐..
부모님 걱정에 디프레스된 나날이라 조금 바람을 쐬고 왔다
추억여행이랄까.. 암튼 지금의 모습을 접고 젊은 우리 식구들의 뒷장을 펼쳐봤다
좋은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