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젊은이들이 보수의 적이면 답이 없다
박원순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우리 사회에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의 탄핵, 불평등 사회에 대한 반란의 경고 등 대충 손꼽아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그렇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20~30대 청년세대와 40대까지 가세한 청·장년 세대의 반항과 반란으로 요약된다. 박 후보자의 당선도 이들의 압도적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선거전은 외양상 박 후보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2파전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내용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였다. 차기 대권을 놓고 박근혜 의원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리전 양상이기도 했다. 선거 국면이 어떠했든 분노한 청춘이 선거전의 판도를 변화시킨 주인공임은 명백하다.
무엇이 젊은 세대를 분노의 활화산으로 만들었는가. 이들이야말로 지금 이 나라의 주역이요 내일 이 나라를 이끌고 나갈 지도자 군이다. 그들의 분노의 질주를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 소이연이다. 이들의 무한질주를 방치했다간 이 나라는 불행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남북 대결, 남남 지역 갈등, 이념 대립, 계층 충돌로도 이 나라는 지금 인심이 사금파리처럼 냉혹하다. 여기에 세대 간 대결까지 가세한다면 이 나라가 모래성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젊은 사자들을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게 한 것은 그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의 부재다. 20대 중후반과 30대 초반의 실업난, 30대와 40대의 주택난과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그들은 삶의 신산에 지쳐있다.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신세였다. 이들 젊은 세대는 현재에 절망하고 미래는 포기했다.
꿈과 희망을 상실한 세대로 변해 버렸다. 하루 3끼 밥을 먹지 않고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도 집 한 채 장만하는데 몇 십 년 걸린다는 개그 프로를 우스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슴이 싸했던 것도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현실에 대한 믿음을 버린 것이 하등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기대도 접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되돌아보면 IMF 이후 우리나라는 90%의 하류인생과 10%의 일류인생으로 양분되는 현상이 진행되었다. 아무도 90%를 돌보지 않았다. 아니 쳐다보지도 않았다. 국가를 대행하는 집권세력, 특히 현 정권은 이 10%를 위한 방패막이로 전락해 버렸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여야 등 기성 정치권은 이런 왜곡된 질서를 숙주로 기생하는 기생충에 자족했다. 야당조차 후보를 내지 못하는 불임정당으로 자족해야 했다. 법과 제도, 관행, 질서 등도 가진 자, 힘 있는 자, 탐욕스러운 자를 위한 무기요 통제수단이라는 불신이 그들의 머리를 꽉 채웠다.
나라를 이끌 책임을 진 집권여당은 지난 3년간 친이, 친박으로 갈려 한 지붕 두 살림의 추태만 연출하였다. 과반의석을 훨씬 넘는 거대여당인데도 국민에게 정책다운 정책하나 선뵈지 않았다. 뜨거운 피가 끓고 있는 청·장년세대는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 패러다임에서 무지개빛 미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만이 앞을 가로막는 절망감만 맛보았다.
이번 20~30대의 성난 얼굴은 정치적 시민혁명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비상을 위한 날개짓일 수도 있다. 반면 국가 존립의 위기일 수도 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간 국가는 외침이 아니라 내우에 의해 자멸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목도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해법이 없는 문제는 없다. 이번 선거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 다행일 수 있다. 위기를 알리는 경보음이다. 근본적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라는 민성(民聲)이요 천성(天聲)이다. 어둠을 광명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바로 이번에 거부당한 기성 제도 정치권과 그들이 대변했던 기성질서, 승자 독식문화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근원적 개혁이다. 10%의 상류와 90%의 하류로 양분된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입에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나는 자의 특권과 특혜는 제한되어야 한다. 그럴 때 공평, 공정한 경쟁의 무대의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현재의 승자 독식 문화, 경쟁 일변도의 사회 구조는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역으로 부자는 더욱 부자로 만드는 기제다. 99마리의 양을 가진 자가 1마리 가진 자의 양 1마리 마저 빼앗겠다는 재벌의 무한정한 탐욕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
현재 우리는 중산층이 해체되었다. 중산층은 사회의 허리다. 허리가 튼튼해야 그 사회가 안정적이라는 말은 상식 이전의 상식이다. 그런데 허리가 허약한 사회는 한 마디로 미래가 어두운 사회다.
여야 간에 오갔던 복지 논쟁도 그렇다. 소득 2만 달러 시대라지만 하위 90%는 절대다수가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게 적절하다. 복지가 그들에겐 복지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로 파악하는 게 적절하다. 상위 10%는 그들만의 복지에 안주했다. 복지 확대정책이 행여 자신의 밥그릇을 뺏는 게 아닌 가 두려워했다. 걸핏하면 복지 망국론을 끌어 들였다. 애꿎은 남미가 반면교사로 동원되는게 다반사였다. 그들만의 잔치와 축제를 벌여왔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이 사회의 축적된 병폐에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기성 정치권은 정신을 차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목욕이나 하고 옷을 갈아입는 형식상의 재탄생이 아니다. 뼈와 살, 골수, 혈액까지 다 교환하는 자기혁신과 성찰이 수반돼야 한다. 성난 얼굴로 쳐다보는 젊은 세대의 눈길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지혜를 결집해야 한다.
사라져 버린 공생의 문화, 공존의 사회를 회복해야 한다. 공정 사회의 실현이 그 전제조건이요 급선무다. 고위 공직자 하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군 면제, 논문표절, 다운 계약서 따위 등을 연상시키는 공직사회를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박 후보에 대해서도 많은 부정적 자료가 폭로되었다. 적잖은 유권자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콧방귀를 뀌었다.
뭐 묻은 뭣이 뭐 묻은 뭣을 욕한다는 한 마디에 선거의 쟁점조차 되지 못했다. 이 정권의 고위 관료 중 이런 유형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를 찾기가 어렵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썩고 부패하고 더럽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재벌, 정치권, 힘센 자, 명망가등 소위 사회지도층의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것이 결국 부메랑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이 시간부터라도 이런 부도덕한 자는 공직 사회 근처에서는 얼씬 거리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공정사회는 멀리 윤리 교과서의 책갈피에서 찾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상식이 지배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가 바로 공정사회다.
일부 인사들 사이에 천안함 사건이 불신 받은 것은 정부의 초기 대응의 허술함과 미흡함이 주된 원인이다. 그렇지만 당시 비상대책회의의 구성원 중 군 복무자는 겨우 1명이었다는, 코미디보다 더한 코미디가 사건의 진실성을 떨어뜨렸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눈에 핏발이 선 젊은 세대가 이번 선거를 통해 던진 질문에 포함된 사항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사회를 정상 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바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헌법 제 1조에 국민으로 명시돼 있다. 현실은 주인인 국민을 헐벗고 굶주리게 하여 거리로 내몰고 있다. 성난 젊은 세대는 이런 잘못된 현실을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재벌이나 고관대작이 아니라 너와 나 국민 모두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정치, 경제, 사회 변혁의 첫 단추는 청춘의 열정이 꿰맸다. 뒷감당은 기성세대의 몫으로 넘어왔다. 청춘과 기성세대가 손을 맞잡는 어여쁜 순간의 태동이기도 하다.
글/조병철 언론인·전 세계일보 주필
그렇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20~30대 청년세대와 40대까지 가세한 청·장년 세대의 반항과 반란으로 요약된다. 박 후보자의 당선도 이들의 압도적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선거전은 외양상 박 후보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2파전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내용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였다. 차기 대권을 놓고 박근혜 의원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리전 양상이기도 했다. 선거 국면이 어떠했든 분노한 청춘이 선거전의 판도를 변화시킨 주인공임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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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에 예정된 총선과 대통령 선거의 향배를 가늠할 것으로 예측되는 재보궐선거가 실시되는 26일 서울시장 선거가 실시되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제3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무엇이 젊은 세대를 분노의 활화산으로 만들었는가. 이들이야말로 지금 이 나라의 주역이요 내일 이 나라를 이끌고 나갈 지도자 군이다. 그들의 분노의 질주를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 소이연이다. 이들의 무한질주를 방치했다간 이 나라는 불행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남북 대결, 남남 지역 갈등, 이념 대립, 계층 충돌로도 이 나라는 지금 인심이 사금파리처럼 냉혹하다. 여기에 세대 간 대결까지 가세한다면 이 나라가 모래성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젊은 사자들을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게 한 것은 그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의 부재다. 20대 중후반과 30대 초반의 실업난, 30대와 40대의 주택난과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그들은 삶의 신산에 지쳐있다.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신세였다. 이들 젊은 세대는 현재에 절망하고 미래는 포기했다.
꿈과 희망을 상실한 세대로 변해 버렸다. 하루 3끼 밥을 먹지 않고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도 집 한 채 장만하는데 몇 십 년 걸린다는 개그 프로를 우스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슴이 싸했던 것도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현실에 대한 믿음을 버린 것이 하등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기대도 접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되돌아보면 IMF 이후 우리나라는 90%의 하류인생과 10%의 일류인생으로 양분되는 현상이 진행되었다. 아무도 90%를 돌보지 않았다. 아니 쳐다보지도 않았다. 국가를 대행하는 집권세력, 특히 현 정권은 이 10%를 위한 방패막이로 전락해 버렸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여야 등 기성 정치권은 이런 왜곡된 질서를 숙주로 기생하는 기생충에 자족했다. 야당조차 후보를 내지 못하는 불임정당으로 자족해야 했다. 법과 제도, 관행, 질서 등도 가진 자, 힘 있는 자, 탐욕스러운 자를 위한 무기요 통제수단이라는 불신이 그들의 머리를 꽉 채웠다.
나라를 이끌 책임을 진 집권여당은 지난 3년간 친이, 친박으로 갈려 한 지붕 두 살림의 추태만 연출하였다. 과반의석을 훨씬 넘는 거대여당인데도 국민에게 정책다운 정책하나 선뵈지 않았다. 뜨거운 피가 끓고 있는 청·장년세대는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 패러다임에서 무지개빛 미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만이 앞을 가로막는 절망감만 맛보았다.
이번 20~30대의 성난 얼굴은 정치적 시민혁명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비상을 위한 날개짓일 수도 있다. 반면 국가 존립의 위기일 수도 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간 국가는 외침이 아니라 내우에 의해 자멸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목도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해법이 없는 문제는 없다. 이번 선거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 다행일 수 있다. 위기를 알리는 경보음이다. 근본적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라는 민성(民聲)이요 천성(天聲)이다. 어둠을 광명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바로 이번에 거부당한 기성 제도 정치권과 그들이 대변했던 기성질서, 승자 독식문화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근원적 개혁이다. 10%의 상류와 90%의 하류로 양분된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입에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나는 자의 특권과 특혜는 제한되어야 한다. 그럴 때 공평, 공정한 경쟁의 무대의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현재의 승자 독식 문화, 경쟁 일변도의 사회 구조는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역으로 부자는 더욱 부자로 만드는 기제다. 99마리의 양을 가진 자가 1마리 가진 자의 양 1마리 마저 빼앗겠다는 재벌의 무한정한 탐욕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
현재 우리는 중산층이 해체되었다. 중산층은 사회의 허리다. 허리가 튼튼해야 그 사회가 안정적이라는 말은 상식 이전의 상식이다. 그런데 허리가 허약한 사회는 한 마디로 미래가 어두운 사회다.
여야 간에 오갔던 복지 논쟁도 그렇다. 소득 2만 달러 시대라지만 하위 90%는 절대다수가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게 적절하다. 복지가 그들에겐 복지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로 파악하는 게 적절하다. 상위 10%는 그들만의 복지에 안주했다. 복지 확대정책이 행여 자신의 밥그릇을 뺏는 게 아닌 가 두려워했다. 걸핏하면 복지 망국론을 끌어 들였다. 애꿎은 남미가 반면교사로 동원되는게 다반사였다. 그들만의 잔치와 축제를 벌여왔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이 사회의 축적된 병폐에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기성 정치권은 정신을 차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목욕이나 하고 옷을 갈아입는 형식상의 재탄생이 아니다. 뼈와 살, 골수, 혈액까지 다 교환하는 자기혁신과 성찰이 수반돼야 한다. 성난 얼굴로 쳐다보는 젊은 세대의 눈길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지혜를 결집해야 한다.
사라져 버린 공생의 문화, 공존의 사회를 회복해야 한다. 공정 사회의 실현이 그 전제조건이요 급선무다. 고위 공직자 하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군 면제, 논문표절, 다운 계약서 따위 등을 연상시키는 공직사회를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박 후보에 대해서도 많은 부정적 자료가 폭로되었다. 적잖은 유권자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콧방귀를 뀌었다.
뭐 묻은 뭣이 뭐 묻은 뭣을 욕한다는 한 마디에 선거의 쟁점조차 되지 못했다. 이 정권의 고위 관료 중 이런 유형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를 찾기가 어렵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썩고 부패하고 더럽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재벌, 정치권, 힘센 자, 명망가등 소위 사회지도층의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것이 결국 부메랑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이 시간부터라도 이런 부도덕한 자는 공직 사회 근처에서는 얼씬 거리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공정사회는 멀리 윤리 교과서의 책갈피에서 찾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상식이 지배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가 바로 공정사회다.
일부 인사들 사이에 천안함 사건이 불신 받은 것은 정부의 초기 대응의 허술함과 미흡함이 주된 원인이다. 그렇지만 당시 비상대책회의의 구성원 중 군 복무자는 겨우 1명이었다는, 코미디보다 더한 코미디가 사건의 진실성을 떨어뜨렸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눈에 핏발이 선 젊은 세대가 이번 선거를 통해 던진 질문에 포함된 사항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사회를 정상 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바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헌법 제 1조에 국민으로 명시돼 있다. 현실은 주인인 국민을 헐벗고 굶주리게 하여 거리로 내몰고 있다. 성난 젊은 세대는 이런 잘못된 현실을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재벌이나 고관대작이 아니라 너와 나 국민 모두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정치, 경제, 사회 변혁의 첫 단추는 청춘의 열정이 꿰맸다. 뒷감당은 기성세대의 몫으로 넘어왔다. 청춘과 기성세대가 손을 맞잡는 어여쁜 순간의 태동이기도 하다.
글/조병철 언론인·전 세계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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